티스토리 뷰


너무 기뻤다. 벼르고 벼르던 김소진의 단편을 읽을 수 있다는 데에 격분한 나는 책 한권을 모조리 곱씹는데에서 시작하는 얼렁뚱땅한 리뷰는 절대 쓰지 않으리라 다짐한 채 책 중앙의 아가리를 자랑스레 펼쳐 열린사회와 그 적들 을 읽어 내려가기 시작했다. 어디까지가 밥풀때기이고, 어디까지가 밥풀때기가 아닌가? 그는 이 사회에서 배운 것 없고, 가진 것 없는 이를 밥풀때기 라 부른다. 모두가 평등하고 자유로운 세상, 누군가에겐 도달했으나 어느 누구에게는 영원히 오지 않을 열린사회 를 규정하면서 그러한 사회를 만들어가야 할 진정한 이들이 누구인가를 묻는다. 그것은 브루스 박을 비롯한 몇명의 밥풀때기 들이 피운 화톳불이 만들어낸 커다란 원이 점점 꺼져가고 원 크기 또한 줄어들어 그들이 서로 닿을만큼 애처로운 불꽃이 되는데에서 알 수 있다. 화톳불은 아마도 점점 작아져가는 이 세상에서의 그들의 자리를 말하는 것이다. 땔감을 가지러 갔다 발을 헛디뎌 실족사한 브루스 박처럼 우리의 삶 또한 거기서 한 발작도 벗어나지 못함을 고통스러운 리얼리즘으로 그려내는 열린사회와 그 적들 에서 크나큰 비통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하다. 자신의 위치에서 최선을 다하기란 얼마나 어렵고 부질없으며 또한 힘든 일인가. 그는 그것을 벌써부터 알고 있는 듯 하다. 삶에 대한 노력과 근본적인 끈기가 밥풀때기 를 해방시켜 주는 것은 아닌 것이 이 사회다. 즉 이 사회에 아직 열린사회 는 오지 않았다. 오로지 열린사회 의 가능성 위에 박힌 사회가 존재할 뿐. 그의 결말은 에둘러 끝맺어 도무지 살아날 방법이 없고, 밥풀때기 를 벗어나는 구체적인 방법이 제시되어 있지 않아 찝찝하고 매끄럽지 않다. 한번 밥풀때기 는 영원한 밥풀때기 인가. 그저 그런 밥풀때기 라도 열린사회 에 존재할 가능성의 실마리를 한 가닥이나마 심어줬어야 하지 않겠는가.
1910년대부터 2000년대 초까지 20세기 100년간의 문학유산을 총결산한 한국문학전집의 47번째 권이다. 편편마다 시대의 고뇌가 각인되어 있고, 인간과 역사와 풍속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지는 최고의 작품들이다.

엄격한 작품 선정, 기존의 오류를 바로잡은 정교한 편집, 교사진과 교수진의 눈높이 해설, 국어사전에도 올라 있지 않은 낱말풀이 등 독자에게 최상의 문학을 제공하기 위해 노력한 흔적이 고스란히 살아있다. 우리 소설의 풍요로움과 참맛을 제대로 선사할 것이다.


간행사
이선: 티타임을 위하여
윤영수: 착한 사람 문성현
김소진: 열린 사회와 그 적들 / 눈사람 속의 검은 항아리
공선옥: 씨앗불 / 목마른 계절 / 술 먹고 담배 피우는 엄마
한창훈: 목련꽃 그늘 아래서
이메일 해설: 김규중 이선옥
낱말풀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