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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원의 맹견
거르러치무거 헤이허 저
316쪽 | 401g | 153*215*20mm
보림
작가의 이름이 낯설어 작가소개부터 살펴보았습니다. 장신의 키에 머리를 길게 기른 작가는 몽골족 출신으로 두 마리의 흰 사냥개를 벗 삼아 몽골 초원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다고 하는군요. 그래서 그의 문장에서는 도시와 동떨어진 고적한 곳에서 유유자적하는 분위기가 짙게 묻어나며 작품 속에 황야, 초원 등이 자주 등장한다고 소개되어 있습니다.
「중국아동문학 100년 대표선」의 동화들은 대부분 초등학교 고학년용의 동화입니다. 이 책도 마찬가지입니다. 「플란다스의 개」나 알프스의 구조견을 떠올리게 하는 포근한 느낌의 흰색 털의 표지 속 개를 보며 「벤지」의 모험같은 훈훈한 이야기를 기대하고 책을 펼쳤다가 당황했습니다. 우선 이 개의 이름은 귀신 이거든요. 제목에 맹견 이라고는 되어있지만 순해보이는 저 얼굴을 귀신이라고 한 이유가 뭘까. 흰 털이 워낙 고와서 달빛에 귀신처럼 보였던 것일까 혼자 상상의 날개를 펼쳐보지만 책을 읽어가는 내내 불편한 마음을 감출 수가 없게 됩니다.
이야기는 이 개의 시선으로 전개되는데 주인공 개 귀신 의 시선에 비친 인간은 정말 잔혹하고 매정하기만 합니다. 티베탄 마스티프 라는 희귀 대형견과 독일 양치기들이 키웠던 셰퍼드 종사이에서 태어난 녀석은 티베탄 마스티프의 용맹함에 셰퍼드의 영리함과 복종심을 갖추려는 대형견종으로의 품종개량을 위한 계획으로 시작하여, 경찰견으로서의 혹독한 훈련과정을 거칩니다. 그러나 훈련과정에는 따뜻한 보살핌은 없었고 엄격한 통제 속에서 오히려 자극받고 말지요. 결국 경찰견이 되지 못하고 비행장의 경비견이 되나 몸집만 컸지 아직 어린 강아지였던 녀석은 커다란 비행기와 그 소음에 날카로워져 갑니다. 그러다가 사람을 다치게 하는 사건이 발생하고 결국개 시장으로 나와 팔립니다. 녀석을 산 사람은 투견을 위해 녀석을 학대하고 가혹한 훈련을 시키지요.
책 속에서는 훈련받는 과정에서, 그리고 투견장에서의 잔인한살육장면들이 가감없이, 적나라하게 묘사됩니다. 주인공이 사람이었다면 스릴러물이라고 여겨질 만큼요. 두꺼운 책의 절반이 지나가도록 잔인한 장면들은 계속됩니다.그런데 투견장에서의 몸서리쳐지는 개, 늑대, 곰들의 모습 뒤에는 어김없이 그 장면을 즐기고 부추기는 사람들의 모습도 함께 합니다. 사람이라는 또 하나의 동물은 잔인함을 즐기는 짐승이었던 걸까요. 과거 로마시대 검투사들의 경기나, 최근까지도 계속되는 투견, 투우의 모습들이 떠오르는군요.
처음에는 그저 날 때부터 짐승의 피를 가진 개였나보다. 하고 읽다가 결국 깨닫게 됩니다. 귀신이라는 이름도 인간이 이름 지어줬고, 귀신에 걸맞는 잔인함도 인간이 만들어냈다는 것을. 사랑 받아보지 못한 귀신이 너무 안되어서, 학대받고 버려지는 모습이 안타까워 책을 놓치 못합니다. 귀신은 다행히 인간에게서 벗어나 초원에서 들개가 되지만 배고픔에 유목민의 양을 공격하지요. 그리고 알스렁 이라는 아이를 만납니다. 알스렁은 두려움 없이, 조건 없이 귀신에게 다가와 쓰다듬어주지요. 귀신도 본능적으로 자신이 위험한 상황이 아니라는 것을 압니다. 그리고 그렇게 알스렁과의 생활이 시작된답니다.
귀신은 어렸을 때부터 지금까지 뭘 잃어버릴까 봐 두려워한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다. 그러나 지금 이 순간 알스렁을 잃어버릴까 봐 겁이 났다. 이 작은 아이가 부드럽게 어루만지는 순간 귀신은 정말 행복했다. p227
귀신이 처음 만나는 낯설은 감정. 그 감정의 절절함이 전해져와 코끝이 찡해집니다.귀신은 알스렁을진정한 주인이라고 여기며 마음을 다해 복종하게 되지요. 그리고 그 감정을 사랑이라고 말합니다.
아무리 초원에서 야수처럼 이리저리 유랑하고 살았어도 귀신은 여전히 한 마리 개일 뿐이다. 귀신은 인간의 난롯불과 밥 짓는 연기를 갈망했고 자신이 속할 수 있는 주인이 필요했다. p229
알스렁과의 생활은 녀석에게 온통 새로운 것 투성이었습니다. 그동안 늘 경계해야 했고, 의심해야 하며 날이 서있던 귀신에게 따스한 햇살과도 같은 알스렁과의 하루하루는 전에 없던 여러 일들을 경험하게 하지요. 피 속에서 끓고 있다고 생각했던 잔인한 본능. 무엇인가를 물어뜯고 싶은 충동이 사그라지는 것을 느끼지요. 알스렁과 초원에서 뛰어놀며 귀신은 이제 알스렁이 지어준 이름 멍 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주위 유목민들 사이의 전설이 된답니다.
그러나 그것은 놀이일 뿐이었다. 놀이라니. 놀이가 감정을 해소하는 방식일 수 있다는 것을 귀신은 상상조차 해 본 적이 없었다. 즐기며 행복해지는 이 놀이라는 활동이 귀신의 예전 세계에는 존재하지 않았다. 귀신은 지금 사랑하는 주인과 놀이를 배우고 있었다. 그것은 귀신에게 신비로운 시작이었다. 얼음처럼 차갑고 메마른 귀신의 감정 세게에 아주 좁은 틈이 벌어지며 그곳으로 햇볕처럼 다스한 빛이 비집고 들어왔다. p234-235
괴물로 변해가는 괴물에 대한 묘사에 놀라 아무리 고학년동화라고 하지만 아동문학으로 괜찮은 걸까? 라던 우려가 말끔히 사라지는 결말. 주인공의 다음이 궁금하여 도저히 손에서 놓을 수가 없었기도 했지요.
초반의 끔직한 묘사들에 몸에 힘을 주고 읽다가 후반부에서 유목민 가족의 곁에서 난생 처음 따뜻한 애정을 느끼며 평화롭게 살아가는 이야기를 읽으며 힘이 탁 풀렸습니다. 다행이다. 귀신. 아니 멍.. 사랑받을 수 있어서 다행이다. 끝까지 괴물이 되지 않아서 다행이다. 인간이 모두 나쁜 사람들은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어서 다행이다. 그리고 이 책을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읽게 되어서 다행이다...
먹먹한 마음 속에 떠오르는 만가지 생각들. 그리고 진한 감동.
이제 책을 덮고서야 표지 속 개의 모습이 왜 그렇게 따뜻한 눈빛을 하고 바라보는지 알게되었습니다.
초원의 맹견 은 마스티프와 셰퍼드 사이에서 인위적으로 교배, 생산된 개 ‘귀신’의 일생을 통해 생명과 자연의 존엄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이때 그 바탕을 굳건히 지지하고 있는 것은 초원 지대 유목인들의 자연 친화적이고 평화로운 삶과 세계관입니다. 몽골인에게 대대로 전해 내려오는 유목민의 세계관이 이 작품의 토대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 책은 내용상 크게 두 부분으로 나누어 볼 수 있습니다. 앞부분은 주인공 귀신이 투견으로 훈련되어 ‘귀신’이라는 이름에 걸맞게 거칠고 잔인한 살육 기계로 살아가는 이야기로 끔찍하고 적나라한 묘사가 독자들에게 충격을 안겨줍니다. 그에 반해 뒷부분은 초원으로 흘러들어간 귀신이 유목민 가족의 곁에서 난생 처음 따뜻한 애정을 느끼며 평화롭게 살아가는 이야기입니다. 이 두 부분은 뚜렷하게 대비되며 투견장과 초원, 인공과 자연, 전투와 돌봄 등 정반대되는 개념들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도록 합니다.
1. 비행장을 떠나
2. 낯선 세상
3. 초원
4. 검은 눈
5. 초원 깊숙한 곳
6. 유목민 취락지
7. 진정한 겨울
8. 학교에 동반한 대형견
9. 초원은 역시 초원
10. 푸른 목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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